860년에 세워진 산사 야마데라의 전망대로 알려진 고다이도ⓒ News1 윤슬빈 기자
860년에 세워진 산사 야마데라의 전망대로 알려진 고다이도ⓒ News1 윤슬빈 기자

에스키모인들은 분노를 느끼면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걷는 습관이 있다고 전해진다. 일이나 사람에게서 지친 몸과 마음을 씻겨주는 데엔 자연만큼 좋은 게 없다.

일본 도쿄에서 신칸센(고속열차)을 타고 약 2시간 30분, 자연 속 힐링을 위해 야마가타를 찾았다.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갓산ⓒ News1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갓산ⓒ News1


야마가타는 서쪽으로는 한국 동해와 맞닿은 바다와 동쪽으로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이 덕분에 아름다운 해안선과 숲이 우거진 산을 자랑하며 도호쿠(동북)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여기에 천연 온천지로도 유명하다.

여기에 더해 야마가타는 자연 속 힐링을 넘어 일본 사람들에게 영적 안식처로도 알려져 있다. 1300년 전부터 시작해 일본의 산 숭배 신앙이 가장 오래된 '데와산잔'(出羽三山)이 이 지역에 있다. 데와산잔은 하구로산(羽黑山·414m), 갓산(月山·1984m), 유도노산(湯殿山·1500m) 총 3개의 산을 총칭하는 말이다. 각각 탄생과 죽음, 환생을 의미한다.

 

자오 온천의 상고대 사이를 스노슈잉을 하며 걷는 사람들ⓒ News1
자오 온천의 상고대 사이를 스노슈잉을 하며 걷는 사람들ⓒ News1


◇ 걱정은 잊은 지 오래…수천개 '스노 몬스터'

야마가타의 자연 풍경 중에서도 신비로운 곳을 자랑하는 곳을 꼽는다면 '자오 산'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스노 몬스터'로 불리는 수천개의 상고대를 보고 있노라면 걱정과 근심을 싹 잊게 된다.

해발 1600m에 이르는 '자오 산맥'에 자리한 '자오 온천 스키장'은 2월 중순에서 3월 초까지 스키어와 보더는 물론 상고대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자오 상고대는 시베리아 찬바람과 대량의 눈에 의해 발생한 덕에 크기도 숫자도 어마어마해 '스노 몬스터'로 불린다.

 

로프웨이를 타며 수천 개의 상고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News1
로프웨이를 타며 수천 개의 상고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News1


스노 몬스터를 보는 방법은 로프웨이(케이블카)에 탑승하면 된다. 로프웨이는 탑승장(해발 855m)에서 수빙고원역(발 1331m)을 거쳐 최종 지조산정역(1661m)까지 오른다. 소요 시간은 총 17분밖에 안 걸린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대기 시간은 감수해야 한다.

스노 몬스터가 절정을 이루는 2월 중순엔 로프웨이 탑승하기까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로프웨이에 오르면 대기 시간의 고생은 싹 잊은 듯 풍경에 넋을 놓고 만다. 둘러보는 시간은 제한이 없지만, 내려오는 길도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을 추천한다.

비교적 인파가 덜한 밤에도 오를 수 있다. 스키장에선 겨울이면 빛 축제인 '라이트 업'과 설상차로 상고대를 누비는 '설상차 투어'도 운영한다.

 

야마데라를 상징하는 카이산도ⓒ News1
야마데라를 상징하는 카이산도ⓒ News1


◇ 욕망과 더러움을 씻겨주는 산사

'인증샷'은 여행에서 빠질 수 없다. 눈으로 풍경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지만, 오랫동안 여행을 추억하는 데엔 사진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야마가타의 '인증샷' 명소에도 자연이 빠지질 않는다. 야마가타역에서 차로 30분, 대중교통으로 40분 거리에 자리한 야마데라(山事)는 파노라마 전망으로 유명한 절벽 위 산사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비와 바람이 자연적으로 깎아낸 바위 지대 '미다호라'
오랜 세월에 걸쳐 비와 바람이 자연적으로 깎아낸 바위 지대 '미다호라'


860년에 지어진 이 산사는 정확히 말하면 기암괴석 위 크고 작은 약 30개의 탑과 사찰을 아우르는 산 전체를 뜻한다.

수행과 신앙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입구에서 대불전(최종 목적지)까지 1015개 돌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욕망과 더러움을 정화할 수 있다고 전해져 온다. 40~50분 정도 소요된다.

오르는 계단은 단순 수행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끼 낀 바위, 기이한 바위 지대와 촘촘히 박혀 있는 동전, 무수한 석등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불가사의한 풍경이 펼쳐져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야마가타의 산맥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야마데라의 고다이도ⓒ News1
야마가타의 산맥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야마데라의 고다이도ⓒ News1

 

사심이 있는 자는 지나가지 못한다고 알려진 인왕문의 천장ⓒ News1
사심이 있는 자는 지나가지 못한다고 알려진 인왕문의 천장ⓒ News1

 

야마데라 내엔 다양한 운세 뽑기가 있다ⓒ News1
야마데라 내엔 다양한 운세 뽑기가 있다ⓒ News1


반쯤 걸으면 사심을 가진 사람을 노려보는 두 개의 인왕상이 있는 '인왕문'이 등장한다. 이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산사의 마지막 지점이자, 높이 5m의 금색 아미타여래상을 안치한 대불전이 있고 왼쪽은 야마데라 최고의 전망대가 있다.

여행자들의 발길을 끄는 곳은 인증샷 명소가 있는 '카이산도'와 '고다이도'이다. 아찔한 절벽 위 빨간색의 작은 암자인 '카이산도'는 사찰을 창건한 지카쿠 다이시(자각 대사)를 모셨다. 그 옆에 자리한 '고다이도'가 전망대이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주변의 산맥과 계곡을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속이 뻥 뚫린다.

야마데라는 속세로부터 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일본 불자들 사이에선 수행하거나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고 소원을 빌 때 들리는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하이쿠(세 줄로 구성된 일본의 짧은 형태의 시) 시인 바시인 바쇼한 1689년 이곳에 와서 불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구로 5층탑. 일본 국보로 금속 소재 없이 순수하게 나무로 지어진 목탑이다ⓒ News1
하구로 5층탑. 일본 국보로 금속 소재 없이 순수하게 나무로 지어진 목탑이다ⓒ News1


◇ 신비한 삼나무 숲속 목탑

야마가타까지 갔는데 소위 '기운이 좋다'는 데와산잔 중 한 곳이라도 다녀오지 않았다면 큰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설산 등반은 자신이 없기에 접근성이 쉽고 경치는 빠지지 않는 곳을 찾는다면 '하구로산'(羽黒山)이 제격이다.

하구로산은 해발 414m로 데와산잔 중 저지대 산이다. 정상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고 버스도 운행한다. 정상엔 데와산잔의 신을 합제한 신사가 있는데 하구로산이 '탄생'을 의미하는 만큼 참배객들의 첫 시작지로 알려져 있다.

사실 참배에 관심 없는 여행자에겐 신사보다는 참배 길 길목에 있는 '삼나무숲'과 '5층 탑'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자그마한 신사들이 자리해 있다ⓒ News1
자그마한 신사들이 자리해 있다ⓒ News1

 

수령 1000년이 넘는 삼나무. 하구로산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News1
수령 1000년이 넘는 삼나무. 하구로산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News1


참배 길은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산악 신앙의 성지라는 것을 자랑하듯 신비로운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

길 양옆으로 삼나무들이 빼곡히 펼쳐지는데 수령이 300~600년인 만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있다. 하구로산의 삼나무는 의미는 남다르다. 무려 580그루 이상이 천연기념물이고 미쉐린이 여행지를 평가하는 그린가이드에서 별 3개를 획득하는 데 일조했다.

풍경에 넋을 놓고 10분 정도 걸었을까. 삼나무들에 둘러싸인 5층 목탑인 '고쥬노토러낸다. 삼나무 키를 훌쩍 넘는 높이(29.2m)와 목탑 특유의 우아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일본의 국보로 고전 문헌에 따르면 937년에 지어진 탑으로 쇠나 못 등의 금속 소재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나무로 만들어졌다는데 꽤 정교하다.

5층 탑 옆엔 하구로산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로 할아버지 나무로 불리는 '지지스기'(爺杉)도 명물이다. 수령이 1000년 이상의 천연기념물로 고개를 다 젖혀야 나무 끝을 겨우 볼 수 있다.

 

저녁의 은은한 조명으로 낭만적인 분위기가 그득한 긴잔 온천ⓒ News1
저녁의 은은한 조명으로 낭만적인 분위기가 그득한 긴잔 온천ⓒ News1


◇ 치히로가 사라진 그 온천마을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감명 깊게 봤다면 '긴잔 온천'이 빠질 수 없다.

야마가타역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이동해야 닿는 시골 산속 온천마을이다. 미야자기 하야오 감독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하기 전 영감 받은 곳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다만, 소문의 진위는 파악되지 않았다.

긴잔(銀山)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400년 전에 은(銀)광산 산업으로 번성했던 마을이다. 광산이 폐광된 후 마을 중심부의 강을 따라 온천 호텔(료칸)들이 줄지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추위를 피해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작은 정류장ⓒ News1
마을 초입에 자리한 추위를 피해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작은 정류장ⓒ News1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긴잔온천 ⓒ News1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긴잔온천 ⓒ News1


마을을 걸다보면 금세 과거로 시간여행에 빠지게 된다. 강을 따라 자리한 다이쇼 시대(1912~1926)에 지어진 목재 료칸들은 동화 속 세상을 연상케 한다. 해가 떨어지면 거리의 가스등에 불이 밝혀지면서 분위기는 한층 낭만적으로 바뀐다.

마을은 크지 않기 때문에 10~2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인증샷' 명소이기 때문에 천천히 음미하면서 걷는 것을 추천한다. 마을 길목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족욕탕도 있다.

긴잔온천에서 료칸 숙박은 눈이 푹 쌓인 겨울엔 하늘의 별 따기다. 최소 1년 전에 예약해야 겨우 이용할 수 있다.

 

산채 소바ⓒ News1
산채 소바ⓒ News1

 

차가운 소바를 담궈 먹는 산채 육수ⓒ News1
차가운 소바를 담궈 먹는 산채 육수ⓒ News1


◇ 소바의 고장

야마가타는 '소바(메밀·메밀국수)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산과 눈이 많아 농사에 불리하지만, 척박한 지형에 잘 자라는 메밀이 자라기엔 최적지이다. 우리나라 강원도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일본 3대 소바 생산지로 수많은 소바 맛집이 즐비해 있다.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무엇보다 특별한 소바를 먹고 싶다면 '산채 소바'(山菜そば)를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차가운 소바를 따끈한 산채 육수에 담가 먹는 요리이다. 말이 산채이지 온갖 버섯 범벅이다.

기사제휴=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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